(공지)그냥 가려고 했더니, 잠깐만요.

오해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어차피 글 쓸 일도 없습니다만-이 포스팅은 당분간 최상단에 놓아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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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amanhome.egloos.com/


저와 동일한 seaman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시는 유저입니다.
(중복 닉네임이 존재 가능한 이글루스 자체의 한계 때문이라고 보며, 이 분께 악의는 없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제 이글루스 주소는 ssn571이며, seamanhome을 주소로 사용하시는 분과는 별개의 인물임을 밝히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당분간 관리하지 못할 얼음집에 들러 주신 모든 분들께 평화와 안정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2011.03.07. seaman(ssn571)

Ps. 바다로 나가기 전, 당황스러웠던 사태에 대해 조언해 주신 R님. 감사합니다.
Ps2. 문 쳐닫았군요. 내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냥 잡다한 이야기들.

1. 다음주면 꿀이나 쪽쪽 빨아먹던 애벌래에서 일개미로 변신합니당. 아 쉬파 응애에요.

2. 이야기의 초장부터 '저는 온건 보수적인 성향이라서' '개인적으로 강경보수우익 성향이 다분히 있어서' 라고 자칭하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될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꾸며내고 있는 겉모양새가 다를 뿐, 결국 그들의 행태는 패션진보와 하등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3. 역시 뉴밸이고 디씨고, 걍 입닥치고 기무사가 우민끼 보듯 장기간 예의주시하며 눈팅하는 게 최고임. 
    그러다보면 슬슬 입 열고 싶어지고 저격질도 좀 해보고 싶어지고 그러지만 귀찮은 건 싫음. 
   (저번에 노르만인들이 사는 땅의 조선인이라는 소설을 쓴 모 자의식과잉 양반 건들었던 것도 죠낸 후회하고 있는 중임.
    뭔가 좀 눈에 띄는 글에 끼어들어가서 수없이 많은 댓글 달며 자기 사탕발림 하고, 자기가 맘에 안 들어하는 사람들
    자기 멋대로 각색한 소설로 신나게 허수아비치며 까대는 그 양반 화법 뻔히 알면서 건드렸으니. 한 200살은 살 수 있겠지.ㅋㅋ)

    그런 점에서 뉴비갤의 초신성 무념을 위해 부왘을 울리겠습니다!!.부왁ㅋㅋ!! 부왘ㅋㅋㅋ!!

잠시 돌아왔습니다.

예상보다 쉽더군요. 그래도 피곤합니다. 어께도 무거워졌지요.
잠시 숨을 돌린 다음-바쁠 듯합니다-다시 들어가야겠습니다.

........바다로 돌아가는 건, 잠시 뒤가 될 듯합니다.

들어가볼까요.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뱃놈입니다.

걱정했던 일은 '일단은'좋게 풀린 상태입니다만. 아무래도 뜀박질을 안 한 지 오래 되어, 어떻게 끝날 지는 모르겠군요.
(물론 기를 쓰고 버텨 볼 생각입니다.)

이제 슬슬 들어갈 때가 되었군요.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아무쪼록, 저를 알고 계신 모든 분들에게 축복 있으시길.


그냥 잡다한 이야기.

1. 흔들리지 않는 잠자리, 8시간 이상 늘어져라 잘 수 있는 잠, 취하도록 맘껏 퍼마실 수 있는 술, 어머니와의 통화, 인터넷.
항상 내 몸에 배여 있던 기름냄새와 익숙한 흔들림을 그리워했으면서도, 다시 나갈 때가 되니 이 모든 게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

2. 가난이라.....
(아랫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감이 오셨겠지만.)나는 공단지역이자, 또한 평준화 지역이기도 한 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애초부터 그리 잘 산 것도 아니었지만. 중학교 3학년 때쯤에는 여러 일들이 겹치면서 상황이 극히 나빠져 있었었다.
최소한 7개월 이상은 더 살 수 있었던 집은 있었고 하루 한 끼 이상은 먹었으니 그렇게까지 가난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먹고 살면서, 가능하다면 학업도 계속할 각오를 해야 했다.(의무교육은 초등학교까지였다.)

처음에는 공군 부사관이 되기로 마음먹고 공군기술학교(지금은 항공과학고인가 그럴 것이다.)를 지원했다.
필기는 무난하게 넘겼지만, 배만 나오고 체중도 근육도 적었던 ET몸매와 저질 체력 덕분에 신검과 체력장에서 말아먹었고
그렇다고 인문계로 그냥 돌격할 수도 없었던 게. 내 성적은 확실하게 장학금을 따낼 수 있을 정도로 특출나게 우수하지도 않았다.
(줄기차게 인문계로 날 이끌려던 담임에게 나는 위의 이유로 완고하게 거부 의사를 표했고, 그 여담임은 복수로 내 생활기록부에다 
 '분석력이 뛰어나고 논리적이며 자립심이 강하나, 사고가 편협함'이라고 적어넣었다. -ㅅ-;; 일진조차도 다 좋게 적어줬으면서...) 
인문계로 진학하고 대학에 가서 역사학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랬다간 뒷감당을 도무지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선원학교를 선택했다. 마지막까지 담임과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마감 날 직접 찾아가 원서를 내고 돌아왔다.
발표는 12월에 중순에야 났다. 그때는 선원학교가 좀 막장이었던 시절이라 무난하게 붙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불안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나와 같은 이유로 인문계 진학을 포기한 다른 중상위권 학생들이 아니었더라면 인문계에 진학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일진들과 날라리들이 마치 서울대에 합격한 고3이라도 된 것마냥 환호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도 어느 정도 분별력은 있어서, 인문계 못 간 일진이나 날라리에게만 그랬지만-그들이 실업계로 가게 된 학생을 병신이라고
놀리는 모습도 보았다. 인문계 진학과 역사학도의 꿈을 포기한 직후의, 앞에 보이는 모든 게 안개 속이었던 때의 일이었다.

가난을 뼈저리게 느꼈던 건, 그리고 암울함과 위화감을 동시에 느껴야 했던 건. 바로 그 때였다.  급식비를 못 내서 이름이 불렸을 때나(담임은 9월이 되어서야 눈치를 채고 따로 부르기 시작했다.) 준비물을 못 챙겨갔던 때나 집 전화가 끊겼던 때가 아니었다.  

(물론, 내가 급식비 못 내고 쫑코먹는 거나 밥 제대로 못 먹은 것에 대해 수치심이나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던 건 학교에서 밥먹고 집으로 돌아와, 차가운 방에 걍 누워 다음날 아침까지 깨어있는듯 자는듯 걍 정신줄 놓고 누워있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누워있으면 정말 배고프지도 않고 시간도 잘 간다. 어쩌다 돈 생겨서 좀 잘 먹은 날에는 정신도 또렷하고 잠도 안 왔는데
그럴 땐  학교 앞에서 받은 기드온판 성경책을 읽어주면 되는 일이었다. 한 번은 4시에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대로 엎어져서
계속 자다가 밤 8시 40분에 지각인 줄 알고 학교로 달려나갔던 적도 있다. 뭐, 정신과 시간의 방에 갖혀 있었던 시기었달까.)
 
3. 중국 연안을 항해하는 일은 여러 의미로 스릴있고 재미있으며 감수성을 자극하는 일이다.
2010년도, 육지에서 인터넷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잘난 척하며 장광설을 내뱉을 여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 연안의 우중충한 바다색과 해안선의 암벽은 다시 미칠 듯이 그리워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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